온라인 독서모임인 빡독x하노버를 하면 독서 환경설정, 서평, 생각 나눔 등 많은 장점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독서 초보자이고, 해외라서 책 한 권 한 권이 소중한 나에게는 괜찮은 책을 소개받을 수 있는 것도 최고의 장점이다. 그동안에는 체인지 그라운드 또는 신영준 박사님, 고영성 작가님, 웅이사의 하루 공부 등을 통해서 책을 선정했는데 이번에 빡독러를 통해 추천받은 책을 읽으면서 독서에 재미를 좀 더 붙여가는 중이다.
빡독x하노버 나눔 시간에 최진석 교수가 진행하는 독서모임에 대해 들었었다. 그 독서모임에서 진행했던 책들은 문학작품이 많았는데 그중 하나가 <걸리버 여행기>였다. <걸리버 여행기>를 아마 전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걸리버가 소인국과 거인국을 다녀왔다.'
이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는 총 4부로 우리가 아는 소인국(릴리퍼트)과 거인국(브롭딩낵)은 물론, 하늘을 나는 섬 라퓨타와 말(馬)의 형태를 한 동물이 지배하는 유토피아(후이늠국)를 포함하고 있었다. 문학 작품을 어렸을 적 어설프게나마 봤던 기억을 제외하면 단 한 번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어서 대충만 알고 제대로 몰랐던 <걸리버 여행기>의 뒷부분을 알고 싶어 읽게 되었다.
<걸리버 여행기>를 읽던 도중 이 책이 그냥 이야기가 아니라 당시 영국 사회를 풍자하는 내용이 담겨있는 풍자와 해학의 미를 가진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걸리버 여행기>와 같은 책은 단순히 정신적 쾌락을 위해서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 안에 정치, 사회, 역사 등 다양한 해석 거리들이 있었다니. 전혀 몰랐던 내가 부끄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릴리퍼트 (소인국)
인간의 1/12 크기의 소인들이 사는 릴리퍼트에서 걸리버는 영웅으로 살았다가 모함으로 인해 사형에 처하는 등 다양한 사건을 겪게 된다. 소인국에서 실력이 아닌 줄타기로 관직을 뽑는 모습에서는 정치 관료자들의 무능함과 부정부패를 풍자하는 것 같았고, 낮은 굽과 높은 굽을 신은 사람끼리 대립하는 모습은 당파 싸움을 풍자하는 것 같았다. 달걀의 넓적한 쪽이 아닌 뾰족한 쪽으로 깨야하는 것도 무언가를 풍자하는 것 같은데 확실하게 모르겠다. 정치의 불화가 사소한 것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릴리퍼트를 위해 전쟁에서 승리를 가져다 주었지만 어디나 음해 세력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걸리버 역시 예외가 없었다. 왕을 구하기 위해 한 오줌으로 불을 끈 사건은 융통성은 물론 그 본질을 잊은 법에 의해 오히려 걸리버가 중형을 받는 원인이 된다. 이런 모습도 당시 정치 상황이 얼마나 한심하고, 내실보다는 보여주기 식 법의 집행이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보았다.
브롭딩낵 (거인국)
거인국에서 걸리버는 소인국과 반대로 상대적으로 약자 혹은 악(惡) 자의 입장을 경험하게 된다. 선한 왕이 걸리버에게 인간의 역사를 듣고 나서 한 이야기를 통해 인간 자체가 얼마나 악랄하고, 한편으로는 얼마나 미물인지를 표현한 것 같다.
"너희 인간은 땅 위를 기어 다니는 징그러운 해충 중 가장 끔찍한 족속이구나" <걸리버 여행기> 중
<걸리버 여행기>에 있는 해설을 보니 거인국에서의 걸리버는 이전과 다른 경험들을 하게 되면서 새로운 정체성을 얻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이는 4부 이후 고향으로 돌아온 걸리버의 상태가 반미치광이가 되는 것의 복선을 의미한다고 했다. 1908년 최남선이 '소년' 창간호에 걸리버 여행기를 실으면서 원래 순서인 소인국 - 거인국이 아니라 거인국을 먼저 실은 이유가 거인국에서의 걸리버 정체성과 구한말 조선인이 처한 암울한 상황과의 밀접한 관련성 때문은 아닌지 짐작하는 부분에서 소름이 돋았다.
2월 나눔에서 만난 빡독러가 했던 말이 떠 올랐다.
"소설을 스토리 따라서 읽기는 좋으나 그 안에 있는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어렵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부분이었다. 소설도 그냥 읽는 것인 줄 알았다. 소설을 분석하는 것은 수능 언어영역 문제풀이용이지 실제 소설은 그냥 뭐랄까? 감동, 교훈 정도 주는 줄 알았지 숨은 의미, 앞서 말한 풍자 이런 것은 해석해 볼 필요성조차 생각한 적 없었다. 해설을 읽고 나니 종종 문학 작품들을 읽으면서 의미를 파악하는 연습을 하고 싶어 졌다. 아, 이래서 어릴 때 문학 작품을 많이 읽은 사람들이 공감을 더 잘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 것일까? 숨은 의미를 파악하고 해석하는 연습이 되어 있어서?!
라퓨타
백성들이 죽어나는 것과는 별개로 수학과 음악만을 중요하게 여기거나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지식에만 매몰되어 있는 지배층들을 보면서 당시 사회에 만연한 책임감 없고, 편향적인 지배층을 풍자하는 듯 보인다. 하늘에 떠 있기 때문에 나라 곳곳을 살피고, 통치하고 소통하는데 유리하다고 생각을 유도한 것인지 실제 이야기는 지배층과 피지배층 사이의 의사소통 부재 등 괴리를 보여주면서 사회를 좀 더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재료로 사용한 것 같다.
영생을 할 수 있는 곳으로도 가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또는 바라는 젊고 건강한 상태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영생이 아니라 점을 가진 특정한 사람들이 아무런 행복도, 의욕도 심지어 제대로 된 기억도 없이 행정상으로는 죽은 자 처리가 되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진시황이 었나? 불노초를 찾으러 돌아다녔다는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명예와 부, 권력 등을 얻게 되면 이를 평생 유지하고 싶어 한다. 나부터도 그럴 것 같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것이 부질없음을 걸리버가 말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후이늠국 (말의 모습을 한 동물이 있는 유토피아)
말의 모습을 한 후이늠과 인간의 모습을 한 야후가 사는 후이늠국을 통해서 인간의 탐욕과 흉칙함을 풍자하는 것 같았다. 후이늠국을 유토피아라고 칭하는 이유는 거짓말, 의심 혹은 불신과 같은 부정적인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후이늠들에게 인간의 세계는 흡사 자신들과 함께 살고 있는 야후와 같았다. 걸리버는 이 후이늠국의 매력에 빠져서 급기야 말의 흉내를 낸다. 이제야 왜 앞에서 걸리버의 정체성이 복선이라고 언급했는지 알겠다.
한편으로는 후이늠국이 유토피아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진정한 유토피아라면 야후가 존재할까? 라는 의문이 생겼는데 실제로 이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 것 같다. 후이늠국이 원래는 야후국인데 후이늠이 지배하면서 고상한 척 살고 있는 것이고, 오히려 야후를 경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있다고 하는데 이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왜냐하면 걸리버를 추방하는 방식에서 걸리버가 야후를 선동할 것을 두려워 한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독서초보자를 위해서 내가 읽은 <걸리버 여행기>에는 해설 파트가 있었다. 해설 파트를 읽고 나니 좀 더 명확해진 기분인데 언젠가는 내 스스로 해석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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