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노케 히메>보다 <원령공주>라는 이름으로 고등학교 시절, 제2외국어가 일본어인 탓에 수업 시간을 이용해서 본 기억이 있다. 억지로 봐서 그런가 내용과 앤딩도 기억이 잘 나지 않았고, <모노노케 히메>라고 했을 때 내가 안 본 작품이라 생각했다. 겨우 생각한 것이 흰 늑대와 여자 아이 나왔다는 것 정도가 전부이다.
이쯤만 되어도 충분히 예상했겠지만 애니메이션(이하 애니)에 관심이 단 1도 없고, 지브리가 뭔지도 몰랐고, 미야자키 하야오가 누군지는 당연히 몰랐다. 혹자는 '일본을 싫어하냐'고 물어보는데 그것과 별개로 디즈니에서 나온 애니도 잘 안 본다. <미야자키 월드>를 이해해고자 <붉은 돼지>, <하울의 움직이는 성>,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도 봤는데 디즈니 만화영화보다 훨씬 재미있게 봤다. 왜냐하면 디즈니 애니는 중간에 자꾸 단체로 또는 개인이 노래를 해서 재미가 없고, 몰입도 잘 안되었다. 심지어 엘사가 부르는 레릿고도 뭐 그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체인지 그라운드에서 주최하는 온라인 독서모임 씽큐온 덕분에 새로운 분야에 겁먹기 보다는 도전할 수 있는 방법과 용기를 얻었기에 애니 왕초보인 내가 <미야자키 월드>를 읽었다.
* * * 스포주의 * * *
상대적인 선과 악
다른 영화나 애니에서는 보통 선과 악의 대립구조를 가지고 있다. 소위 히어로와 빌런이라 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히어로를 응원하고, 빌런이 무너지는 것에 현실에서는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현상을 간접 경험하며 통쾌함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마블의 슈퍼 히어로 영화에서 다뤘듯이 현실적으로 히어로가 악당과 싸우다가 부서진 동산과 부동산 피해와 그들은 선한 역할이라는 이유로 법과 같은 통제장치가 없는 것과 같은 문제들은 무시할 수 있을까?
세상에 무조건 좋고, 무조건 나쁜 것은 찾기가 굉장히 힘들다. 심지어 마약도 적당하게 필요에 의해서 사용한다면 의료용으로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은가? 살인도 다른 것을 고려하지 않고, 사형제도라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사회의 질서 유지 측면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는가? 그렇다. 우리에게 발생하는 모든 사건은 환경과 우리의 판단 등 복잡한 사회 시스템 속에 다양한 요소와 결합하여 선과 악으로 상대적으로 인지할 뿐이지 절대적이지 않다.
<모노노케 히메>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행동은 선한 부분과 악한 부분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서 저자가 친구에게 했던 이 말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착한 편과 나쁜 편을 나눌 수 없어! 그게 핵심이라고!"
* * * 스포주의 * * *
대표 캐릭터의 선과 악
아시타카
<모노노케 히메>는 아시타카의 시선으로 스토리가 진행된다. 마을을 지키기 위해 선한 마음으로 재앙신을 죽였음에도 저주를 받아 자신이 이끌어야 할 마을을 떠난다. 이 때 아시타카가 '재앙신을 죽인 사건'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였다면, 운명에 맞서 싸울 생각을 하지 않고, 현실 부정 또는 도피만 했다면 마을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물론 이 애니도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말이다. 아시타카는 서쪽으로 가는 동안에 사람도 구하고, 여자 주인공인 '산'도 돕고, 인간과 자연 중간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려고 노력하는 등 위험하고 힘들지만 선한 역할을 도맡아서 한다.
그럼 다른 면은 없을까? 악까지는 아니지만 오지랖을 굳이 부리면 극 초반에 아시타카를 오라버니라고 부르면서 마을의 규칙도 어기고, 벌 받을 각오로 그를 배웅한 '가야'라는 여자가 나온다. 자신이라 생각해 달라고 목걸이를 하나 주었는데 아시타카는 '산'에게 그 목걸이를 준다. 나중에라도 가야와 아시타카 그리고 산이 만난다면 안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영화가 끝날 무렵에 아시타카는 에보시에 이어서 마을을 이끌게 되는데 원래 있던 마을로 가지 않는 이유가 '산' 때문인 것인지 마을에 신세를 갚겠다고 한 약속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시타카의 고향의 리더는 잘 정해졌는지 걱정이다.
모로
늑대인줄 알았는데 들개인 모로는 숲을 침범한 인간이 들개의 이빨을 피하기 위해 버리고 간 '산'을 키웠다. (여담인데 뜬금포로 이 부분에서 낳은 정과 키운 정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인간도 자연도 아닌 산의 운명을 안타까워 한다. 과거 모로가 인간을 공격했을 때의 상황을 모르지만 자신 때문에 부모와 떨어진 산에 대한 죄책감이 그로 하여금 모성애를 느끼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연이 인간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여 모로를 두려워 한 인간으로부터 버려진 인간을 불쌍히 여기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로가 자연을 걱정하는 생각이나 행동은 선한 것 같지만 에보시를 죽여야 끝난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 선은 아닌 것 같다.
특히, 모로와 아시타카가 대화하는 장면에서 아시타카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이야기 하지만 모로는 인간이라 멋대로 생각을 한다고 다그친다. 하지만 모로 본인도 자기 멋대로 생각하지 않은가? 개인의 생각을 이야기 하는데 싸잡아서 'OO이니깐 그렇지 뭐.'라고 하는 것은 편견과 선입견 아닐까? 생물학적으로 산은 인간인데 본인이 키웠다고 해서 자연으로 편을 가르는 것도 아시타카 입장에서는 멋대로 생각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마지막 전투를 준비할 때 산은 멧돼지들에게 함정이 있다고 알려야 한다고 하지만 모로는 멧돼지의 지도자는 알지만 자존심 때문일 것이라며 멧돼지를 말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게 모로가 원하는 자연이 이겨서 산을 보호하는 방법인가? 적극적으로 이기고 싶어 하는 산에 비해 수법을 알아차렸지만 그 내용을 공유하지 않는 그의 모습이 정말 멋대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별개로 이 부분은 리더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부분이었다. 리더는 자존심으로 팀을 이끄는 것이 아니다. 인간을 밀어내고자 했다면 그에 맞는 전략을 세워야지 자존심 때문에 정면 돌파만 주장한다면 다 죽는다.
산
<모노노케 히메> 즉 원령 공주가 바로 산이다. 어릴 때부터 들개와 자라서 인간을 증오하고 자연의 편에서 싸운다. 모든 인간은 나쁘다고 생각한 산이 인간인 아시타카를 좋아하게 된다. 학창시절에 이런 말이 있었다. 객관식 시험에서 '모든', '절대' 와 같은 말이 나오면 정답이 아닐 확률이 높다고 했다. 삶도 마찬가지다. 어찌 모든 인간이 나쁠까?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는데. 그리고 앞서 말한 것 처럼 좋은 또는 나쁜을 결정하는 것은 관점 차이이다. 에보시는 자연의 입장에서 나쁜 사람이다. 하지만 인간들 입장에서는 좋은 사람일 수 있다. 편향은 이런 판단의 기회조차 허락하지 않기에 반드시 멀리해야 한다.
같은 자연에 있던 원숭이들은 산을 인간으로 여긴다. 하지만 산은 어릴 때부터 자연이라고 세뇌되어 살았다. 어쩌면 이런 상황이 에보시를 죽여서 자연으로 인정받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자, 여기서 문제! 정당방위와 같은 특수상황을 제외하고는 살인은 나쁘다. <모노노케 히메>에서 자연은 인간이 자연을 죽인다고 한다. 때문에 자연은 분노하는 것이고, 인간을 증오한다. 그 결과 자연을 못 죽이게 하려고 자연이 먼저 인간을 죽이려고 한다. 이 살인은 정당한가?
산을 보면서 희망적인 것을 하나 찾았다. 어릴 때부터 자연과 함께 생활하게 하면 혹시 그 아이는 지구 환경 문제 관련해서 전혀 그렇지 않게 자란 아이보다 신경을 더 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에보시와 지코보
단순하게 생각하면 인간이 사슴신을 죽이려 했고, 자연을 침범하니 인간은 악당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럴까? 에보시는 극 중 사회적 약자라고 할 수 있는 한센병 환자와 여자들을 다른 여느 남자들 처럼 일할 기회도 주고, 주도적으로 살 수 있도록 했다. 이는 분명 인간들에게는 착한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그 일들은 자연을 이기려고 만든 무기 제조였고, 무사라고 칭하는 다른 인간 집단들과 싸우는 이유가 된다. 그들도 인간 집단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연을 침범하게 된 것이다. 무조건적으로 욕만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닌 것이다.
<크리에이티브>, <사피엔스>를 통해서 내 기억이 맞다면 인간은 태초에 자연을 또는 다른 종들을 박살 내면서 살았다. 그것이 같은 인간이라고 해도 말이다. 자원, 종교, 이념 등 다양한 이유로 전쟁을 했는데 <모노노케 히메>도 다르지 않다. 타타라 마을의 무기가, 기술력이 다른 인간 집단들에게는 전쟁 이유가 되었다. 어쩌면 본능적으로 이렇게 싸우는게 더 '자연'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만 우리 인간이 다른 동물과 가장 다른 것은 '이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이성은 사람마다, 패거리마다 다른데 이 다름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이해와 대화 그리고 존중이다.
지코보를 보자. 황제의 명령을 받아 움직이고 있었는데 누가 그 당시에 황제의 명령을 거역할 수 있었을까? 그냥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아니였을까? 하지만 마지막에는 황제의 명령을 자의든 타의든 거역했다. 앤딩장면에서 그가 한 말 "아이, 이게 뭐야. 진실이 이겼나?" 라는 말은 본인도 '이성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렇게 하면 안되는 것을.
에보시의 앤딩은 정말 멋있는 리더상을 보여준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신념으로 자연을 공격하였으나 결국 자연에 의해서 목숨을 건지고, 자연의 위력을 경험하고 나서 본인의 잘못을 인정했다. "잘못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인정하는 것은 아무나 못한다." 심지어 자신의 퇴장과 후계자 승계까지 이루어 졌다. 에보시가 악역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사슴신
<미야자키 월드>가 있어서 사슴신에 대해서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책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상관없는 한가지만 말하겠다. 제발 말 좀 해라. 능력이 뛰어나면 뛰어났지 말을 한마디도 안하니 멧돼지를 비롯 모든 생명체는 사슴신이 생명의 신이라 생각을 했다. 생명과 죽음을 좌지우지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사슴신은 꽃을 피우는 신이었다. 사슴신이 자신의 능력을 남이 다 알아 줄 것이라 생각하고 본인의 일만 묵묵하게 하니 오해가 생기고, 결국 많은 죽음으로 까지 이어졌다. 총을 쏘려는 에보시에게 경고 한마디라도 해줬으면 불필요한 죽음은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미야자키 월드>를 읽고 해당 애니를 보니 색다른 관점을 선택해서 볼 수 있었다. 정말 놀라운 경험이다. 여럿이 아닌 혼자서 같은 영상을 다른 관점으로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니 말이다. 고영성 작가의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서 '관독'이라는 것이 나왔던 것 같은데 같은 맥락처럼 느껴진다. <미야자키 월드>를 통해서 애니에 관심이 생기고 좋아졌다! 라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겠지만, 이 책을 통해서 여러 교훈을 되새길 수 있었다.
<미야자키 월드>의 저자 수전 네이피어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연구하고 분석하여 <미야자키 월드>에 담았다. 누군가가 나의 결과물을 연구하고 분석하여 해석한다면, 그래서 나의 가치관이나 세계관 등을 글로 대중에게 알린다면 정말 영광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나의 블로그에 있는 글들이 누군가로부터 연구당할 가치가 있는 결과물인지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다. 한 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매진할 수 있는 내적 동기가 되었다.
참고로 스튜디오 지브리는 재택근무와 원격 수업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모노노케 히메>, <하울의 움직이는 성>, <벼랑 위의 포뇨>,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천공의 성 라퓨타> 등 자신들의 영화 속 명장면으로 만든 배경화면을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속적으로 다양한 배경화면을 만들 예정이라고 하니 관심있는 독자들은 확인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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