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역사로 미래를 보는 방법 -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

서평/2020

by _10eggs_ 2020. 7. 25. 10:57

본문

2020년 진성 졸꾸 프로젝트

16번째 서평 - 다시 보는 5만년의 역사

씽큐ON 6기 수은PD 1그룹 짤막 후기.

환경설정의 끝판왕.


다시 보는 5만년의 역사

빅히스토리를 다룬 책이라 당연히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완독을 했을 때, 내 머릿속에 남은 것은 역사보다도 수많은 나의 이야기이다. 예전에 읽었던 <빅히스토리>나 <사피엔스>와 같은 빅 히스토리 책과 느끼는 바가 완전히 달랐다. <다시 보는 5만년의 역사>는 시대별로 흘러가는 이야기를 서사와 맥락 그리고 그들을 연결하여 파생된 서사와 맥락이 또 다른 서사와 맥락과 연결되는 반복적인 과정을 500페이지에 걸쳐 다루고 있다. 솔직히 누군가 나에게 다 읽었으니 5만 년의 역사를 이야기하라고 하면 말할 자신이 없다. 하지만 그 질문은 이 책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 생각을 할 정도로 서사, 맥락 그리고 연결에 대해서 만큼은 분명하게 느낀 것이 있다.

아, 오해할 것 같아 먼저 밝히지만 역사에 관심이 있어서 빅히스토리 책을 본 것은 아니다. 역사에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어느 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막연히 궁금했다. 다시는 석기시대, 청동기 시대 나아가 조선시대는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은데, 지금 닥친 상황이나 앞으로 무엇이 올지 모르는 미래를 역사를 통해 어떻게 대비를 할 수 있는지 말이다. 이 궁금증에서 빅 히스토리 책을 하나씩 읽어 보았고, 사실 답을 찾진 못했었다.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한국에서의 나 vs 독일에서의 나

<다시 보는 5만년의 역사>는 현재의 문제를 현재의 관점에서 풀어 나가는 것이 쉽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현재의 모든 사건은 짧게는 1초 전, 길게는 수억 년 전부터 이어져 온 서사의 파생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결과가 다른 서사와 일치하는 연결점이 있는 경우 협동 또는 같은 편이 되는 것이고, 다르면 갈등 또는 다른 편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상황이 바뀌면 또 편이 바뀔 수 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처럼 절대선이나 절대악이 없다는 것으로 이해를 하였다. 

위에 언급한 것을 내 상황에 대입해 보았다. 현재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독일에서의 나와 한국에서의 나와의 거리감이다. 해외에 거주한 경험이 있다면 공감할 수도 있는데, 해외에서의 나는 한국에서의 나와 조금 달라지는 것 같다. 이를 뒷받침하듯이 한국에서의 나의 입장으로 MBTI를 해보았는데 결과는 ENTJ.

ENTJ @www.16personalities.com

 

내 기억이 맞다면 알파벳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항상 "대담한 통솔자"와 비슷한 성격유형을 받았던 것 같다. 실제로 이 책을 읽기 한참 전에 했던 결과와 방금 전에 한 결과가 똑같이 ENTJ로 나왔다. 하지만 독일에서의 나의 입장으로 MBTI를 했더니 결과는 ISFJ.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독일에 왔다고 거의 정반대의 성향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일까?

ISFJ @www.16personalities.com

 

꼭 MBTI 때문이 아니라 한국에서는 안 그랬는데 독일에서는 다르게 행동하는 현재의 나의 모습이 문제라고 규정하고 지금의 모습에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다. 그러다보니 딱히 어떤 해답을 찾지 못했다. <베스트 셀프>를 통해 막연히 독일어가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했고 독일어에만 집중했다. 얼핏 보면 정답인 것 같은데, 계속 왜?라고 물으면서 서사의 진행방향의 역방향으로 가 보니 "한국에서의 나"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독일에서의 내가 겪는 모든 환경이 한국에서는 전혀 경험한 적 없는 것들이었다. 한국에서는 평생을 문과생으로 살다가 지금은 팔자에도 없는 이과생으로 살고 있으니 전혀 다른 서사가 진행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다. 환경이 달라졌음을 맥락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30년을 산 한국과 5년을 산 독일의 결과물만을 연결지은 것이 실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러운 현상, 다시 말해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그런 현상을 해결하려고 쓸데없는 고민을 했던 것 같았다.

"한국에서의 나"의 관점에서 본 "독일에서의 나"를 보는 대신에 순수하게 "독일에서의 나"만 가지고 <베스트셀프>를 다시 보았다. 결과는 달라졌다. 독일어와 남의 시선이 더 나은 삶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라 생각했었는데 관심 없는 분야에 생계를 위해 일하고 있는 상황이 진짜 장애물로 나왔다. 장애물을 제거하는 전략을 바꿔야겠다.

현재의 문제는 과거에서 파생된 결과물이다. 문제의 서사를 맥락적으로 살펴보자.

 


Latte is horse

꼰대와 청춘은 전혀 다른 의미지만 공통점이 있다. 단순히 나이로만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이가 많아도 꼰대가 아닌 사람이 있고, 반대로 어린 꼰대도 있다. 청춘 역시 그냥 아프다고 청춘이 아니고, 나이에 상관없이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한다면 청춘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청춘은 언제든지 다시 시작될 수 있고, 언제라도 끝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청춘이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지만 그 설렘을 맥락적으로 잘 못 사용한다면 꼰대와 연결될 수 있음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꼰대는 타인의 서사는 무시한 채 자신만의 서사가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도전하고 실패하고를 반복하여 결과물을 얻는 과정을 청춘이라고 하면, 청춘에는 서사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이 서사를 타인의 서사는 고려하지 않은 채 사용하게 되면 꼰대가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내와 상당히 많은 대화를 하였는데 각자의 서사를 좀 더 이해해보자는 취지에서였다. 그러다가 아내의 학창 시절 단골 멘트인 "아빠랑은 말이 통하지 않았었다."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장인어른과 아내가 말이 통하지 않았던 것은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장인어른의단골 멘트인 "넌 항상 그래!" 때문이라고 한다. 무슨 말만 하면 이렇게 말씀하시는 아빠를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다툼은 서사의 충돌이다.

 

눈치 없게 아내 편에서 이야기하지 않고, 그럼상 그렇게 행동을 했냐고 물었다. 항상 그렇지 않았으면 그런 이야기를 듣지 않았을 것이고, 다른 반응이 나오지 않았을까? 아내는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아빠의 잘못으로만 생각했다고 한다. 그 근거로 장모님과 처남 역시 장인어른의 꼰대스러움에 장인어른을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규정했다는 사실을 들었다.

성지로 몰려가는 동안 기독교인들은 다양한 출신과 배경의 사람들과 접촉했다. 그런데 그 모든 사람은 동일한 목적지를 향하고 있었고, 모두 같은 편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사람은 동일한 목적지를 향하고 있었고, 모두 같은 편이었다! 그러나 "같은 편"이라는 개념이 성립하려면 최소한 하나의 "다른 편"이 있어야 했다. 같은 편과 다른 편이 뚜렷이 구별될수록 유럽인들의 정체성은 더 굳건해졌다. -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 중에서>

 

위 구절을 설명하면서 씽크ON 카톡방에 공유된 브레이브박님의 "마녀는 계속 나타나야 했다."를 이야기해주었다. 아내가 정확하게 무엇을 느꼈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그렇지만 한참 동안 말이 없던 아내는 눈시울이 붉어졌고, 장인어른에게 카톡을 보내기 시작했다. 아내에게 뭔가 우쭐하면서 말했을 것 같지만 나 역시 이런 실수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우리 집 역시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어설프고 억지스러운 이유를 대면서 아빠를 "은따" 했었다. 책에서처럼 나머지 식구들은 그로 인해 더욱 똘똘 뭉칠 수 있었지만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은 아니었다. 이렇게 나 역시 꼰대를 싫어하지만 꼰대처럼 행동하고 살았던 것이다.

 

마녀는 계속 나타나야 했다.

오늘날 우리를 홀리는 '마법'은? | 마녀사냥은 중세 중기부터 근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유럽, 북아메리카, 북아프리카 일대에 행해졌던 마녀, 마법 행위에 대한 추궁과 재판에서부터 형벌에 이르�

brunch.co.kr

 

꼰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역사가 그랬던 것처럼 섞물리기가 필요하다. 이 책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인 섞물리기는 섞이기와 맞물리기를 조합한 말로 다양한 서사가 만나 결합하여 더 큰 하나의 새로운 서사가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는 꼰대적인 면이 없다고 믿었던 나에게 꼰대스러움을 찾게 했고, 동시에 스스로 반성하게 하였다. 또한 앞으로 내가 만나게 될 다양한 서사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려주었고, 내가 가진 서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었다.  

섞물리기가 없다면 언제든지 꼰대가 될 수 있다. 

 


이민가족의 고충

딸아이가 생기면서 가족이란 단어를 예전보다 더 많이 사용하게 되었고, 최근에 읽은 <혼자 살아도 괜찮아> 때문인지 빅 히스토리를 다룬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를 읽는데 가족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부터 가족 구성원들의 서사를 어떻게 섞물리기할 수 있을까? 등 별별 생각이 들었다. 거의 책의 마지막 부분을 발췌해 보았다. 자기 계발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민가정인 내가 읽을 때는 다음과 해석이 되었다.

.... 오늘날의 "환경"에는 우리 인간의 창조물이 무척 많기 때문에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취하는 모든 행동은 앞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새로운 도전을 유발한다. -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 중에서

 

비행기와 같은 운송수단(인간의 창조물)이 발달하면서 국가 간의 이동이 쉬워졌다. 그로 인한 파급효과로 한 국가에 다문화 사회와 다양한 정체성이 형성되었다. 뭔가 긍정적인 말인 것 같지만 이민을 선택한 나와 같은 가정은 항상 꽃길만 걷는 것은 아니다. 인종차별과 같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정말 많다. 그중 "새로운 도전"이라는 말은 나에게 아이의 정체성을 떠올리게 했다. 집에서는 철저히 한국사람이지만 밖에서는 독일 사람으로 살게 될, 하지만 독일인은 아닌 내 딸을 생각하면 그 아이가 받게 될 스트레스를 미리 경험한 적이 없는 나의 입장에서 상당히 미안하다. 나와 아내가 선택한 이민의 결과가 내 딸에게 고통이나 피해를 주는 게 아닌가 무섭기도 하다. 한국에서 살면 당연하게 여겨지는 한글교육도 독일에서는 새로운 도전이 된다. 한글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2세들은 독일어가 부족한 부모와의 대화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정체성 형성에 언어를 통한 상호 소통이 상당히 중요한데 한국어로 소통하지 못하고 독일어로만 소통을 한다면 여권의 국적이 한국이라고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졌다고 할 수 있을까?

다만, 아이의 정체성 형성을 위기라고 한다면 이것은 다른 의미에서 기회이다. 이 위기를 넘기기만 한다면, 즉 한국인의 뿌리를 이해하면서 독일의 시스템을 익힌다면 한국과 독일의 다양한 서사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딸아이의 정체성 형성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나의 서사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 것 같다. 여기서 독서의 필요성을 더욱 느끼게 되었다. 독서의 필요성은 씽크ON을 선택하게 했고, 그 행동은 서평 공개라는 도전을 유발했다. 이 작은 신호탄이 최종적으로 딸아이의 정체성 형성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도전 - 행동 - 도전 - 행동 -.... = 적응. 

 


"읽는 이의 서사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책"

LIST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