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축구 결승전을 보고 있었다. 내가 응원하는 팀이 1:0으로 이기고 있는 상황. 경기는 어느새 정규 시간 90분이 흘렀고, 추가시간만 1분이 남았다. 이때 1분은 나에게 1시간처럼 느껴진다. 시간이 한참 지난 것 같은데도 단 몇 초만 지났다. 반대로 나의 팀이 지고 있을 때는 45분이 45초처럼 지나간다. 이렇게 심리적 중력(?!)에 의한 상대성 이론을 가지고 있던 문과생은 <아인슈타인의 전쟁>을 읽게 된다.
<아인슈타인의 전쟁>을 읽기 전에는 특수 상대성 이론과 일반 상대성 이론에 대해 배우고 이에 관하여 서평으로 남길 계획이었다.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지키는 에딩턴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책에는 길지 않지만 에딩턴이 소위 말해 군대 징집 대상에서 면제를 받기 위한 과정이 소개된다. 이때 그가 보여준 행동은 나로 하여금 진정한 어른이라면 반드시 가져야 하는 소명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에딩턴은 면제의 뜻이 담긴 편지를 받았다. 거기에 서명하고 돌려보내기만 하면 됐다. 그는 서명을 했다. 그리고 추신으로,... (중략)... 그는 심사 위원들이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과 과학 연구를 분리하게 내버려 두는 것을 거부했다. 이로 인해 면제는 무효가 됐다. - <아인슈타인의 전쟁> ebook p.512
과학 연구를 통해서 면제라는 목적을 이룰 수 있었지만 에딩턴은 자신의 소명(종교적 정체성)에 어긋난 것을 바로잡기 위해 서명만 하면 될 편지에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 이로 인해 면제가 무효되어, 쉽게 면제될 수 있었던 기회를 날렸다. 어차피 군대를 면제받기만 하면 되고, 심지어 면제를 해주겠다고 하는데 면제 사유가 자신의 소명 또는 신념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굳이 의견을 덧붙여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결과적으로는 면제를 받았지만 만약 자신의 소명으로 인해 면제가 끝까지 거절되었을 때도 이러한 선택이 옳았다고 할 수 있을까? 에딩턴은 왜 그랬을까?
소명에 대해 처음 생각해 봤다. feat.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에딩턴을 이해하려면 소명을 이해해야 할 것 같다. 2020년 11월 29일. 신박사 TV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라는 주제로 신영준 박사님의 라이브 방송이 있었다. 신박사님께서 생각하시는 어른이 되는 의미를 총 5가지 관점에서 설명을 해주셨는데 간단하게 두 가지만 살펴보겠다.
강연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지금 행복해야 나중에도 행복하다는 프렉탈(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되는 구조)적인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돈과 행복은 분명 상관관계가 있지만, 일정 시점이 지나면 돈과 행복은 관계가 없다.
만약 돈이 많을수록 행복하다면 부자는 자살을 하지 않아야 하는데 실제로 그런가?
고로 돈은 일정 시점이 넘어가면 행복의 기준이 될 수 없다.
행복은 그냥 얻는 것이 아니다.
정말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는 메타인지가 필요하다.
즉,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추구하기 위해 의식적 노력을 꾸준히 해야 한다.
강연 중 신박사님은 "소명"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하셨다.
소명이란 개인적 삶의 목적을 실현하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
단순히 행복의 기준을 돈으로만 생각했던 나에게는 부끄럽지만 이 날 처음으로 행복의 기준을 돈이 아닌 소명으로 생각해 보았다. 항상 습관처럼 막연하게 냉정한 이타주의자가 되겠다고는 했지만 강연을 듣고 난 뒤 솔직하게 생각해 봤더니 결국 돈만 행복의 기준이었다. 일단 부자가 되고 나서 소명이 되었든 선한 영향력이 되었든 생각해보자는 식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 강연이 행복에 대한 메타인지를 다시 세팅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나의 소명은 무엇일까? 무엇을 할 때 행복감을 느낄까? 삶의 목적은 무엇이며 사회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당장에 멋진 답변을 하고 싶지만 소명이라고 여겨지는 후보군 몇 개만 찾은 상태이고 아직도 찾는 중이고 스스로 묻고 답하는 중이다.
어른이 된다는 의미의 마지막은 태어난 것 자체가 축복임을 인지하는 것이다. 태어나지 않았다면 어른의 의미를 단 한 개도 알지 못할 것이다. 이 사실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삶에 동기부여가 될 수 있고, 소명을 찾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에딩턴의 소명에 따른 행동
다시 에딩턴 이야기로 돌아가자. 태생부터 퀘이커 교도였던 에딩턴은 자신의 과학적 연구뿐만 아니라 자신이 양심적 병역 거부자인 것을 인정받고 싶었다. 따라서 군면제 여부를 심사하는 과정에서 과학 연구의 중요성은 중요성대로 설명을 하고, 전쟁에 대한 양심적, 종교적 반대 의견 역시 밝혔다. 이미 과학 연구로 면제를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소명에 의한 발언까지 하는 행위는 아마 당시 에딩턴의 주변 사람들에게는 바보 같은 결정이었다고 평가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이 부분을 처음 읽자마자 나는 그렇게 생각했으니깐 말이다. 하지만 이 파트를 다 읽고, 앞서 들었던 강연을 연결했을 때, 그의 행동은 소명을 가진 사람의 행동이 아닐까 생각했다.
어릴 적 기독교 학교를 나와 성경이라는 과목으로 시험도 보고,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이런 노래가 아직도 흥얼거려지지만 나는 무교이다. 몇 년 전, 독일 친구들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독일에서는 기독교라고 서류에 표시를 하면 종교세를 내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모인 종교세는 목사의 월급이 된다고 했다. 독일 친구들이 말하길 자신이 기독교라고 하는 사람의 수와 기독교라고 표시한 사람의 수가 같을지 의심이 된다고 했다. 왜냐하면 주변에 교회 다니는 친구는 있어도 종교세를 내는 친구는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과연 종교세가 나가지 않았을 경우, "나는 기독교인데 세금이 나가지 않았으니 세금을 가져가세요."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종교적인 소명까지 가기 전에 현실적인 비자 문제를 생각해 보았다. 독일뿐만 아니라 해외 거주가라면 그 나라 비자가 필요하다. 독일의 경우 비자 심사를 받을 때 워낙 케바케(case by case)가 많아서 전쟁 중 군면제 심사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상당한 긴장감과 스트레스가 동반된다. 어떤 사람은 서류가 다 구비되어도 거절되지만 또 어떤 사람은 서류가 미비해도 2년짜리 비자를 받는 경험담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자 심사를 받는 중 부족한 서류가 있음을 나만 눈치챘거나, 또는 비자가 거절될 수도 있는 상황을 설명해야 하지만 담당자가 모르고 비자를 내준 경우, 에딩턴처럼 손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는 시간과 공간이 또는 중력이 상대적이라는 것을 연구하였지만 그의 소명은 절대적임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자칫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스스로 떳떳하기 위해, 자신의 신념을 지킨 것은 개인적으로는 삶의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친우회(퀘이커교)를 끝까지 고집했던 에딩턴 덕분에 에딩턴 이후 과학 연구는 없지만 에딩턴과 마찬가지로 태생부터 친우회인 사람들은 법적 일관성으로 인해 양심적 거부자가 되기 수월해졌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또 그 뒤에 신청한 사람이 그 영향을 받을 것이고, 이런 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신념을 지켜나갈 때, 사회적으로 선한 영향력이 발휘되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소명을 이루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봤다.
또한 소명을 찾는 입장에서 소명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에딩턴이 그러했듯이 그 소명을 지키는 행동을 실제로 하는 것도 반드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블루 드림스] 왜 나는 그렇게 밖에 이야기 하지 못했을까? feat.미안해 (0) | 2020.12.27 |
---|---|
[부의 추월차선] 엠제이(MJ) 드마코가 전하는 빠르게 젊은 부자되는 방법 feat. 부의 방정식 (3) | 2020.12.14 |
[마법의 연금 굴리기] 문맹보다 무서운 금융문맹 feat. 연금 최적화 작업 (0) | 2020.12.05 |
[친구의 친구] 커뮤니티의 중요성, 필요성과 함께 어떻게 만들고 관리하는지까지! feat. ebook으로 읽고 종이책 사야겠다고 마음먹은 유일한 책 (0) | 2020.11.27 |
[주식의 쓸모] 인덱스 펀드의 중요성! feat. 추천 포트폴리오 비율 (2) | 2020.11.23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