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을 가지고 있는 친한 지인을 대하는 태도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었던 <블루 드림스>, 장과 뇌가 연결되어 있으며, 장내미생물의 개념과 중요성을 어느 정도 깨닫게 되면서 식단에 작은 변화를 줄 수 있었던 <오래도록 젊음을 유지하고 건강하게 죽는 법>. 의학과 같은 우리 몸에 관련된 책은 30대 중반이라 그런지, 어렵지만 꼭 읽고 싶고 이해하고 싶다. 이런 소망과는 달리 현실은 100% 이해보다는 실천할 수 있는 몇가지라도 익히는 쪽이지만 말이다.
이번 씽큐온 8기 마지막을 장식한 책은 청각이라는 이전까지 본적도 들은 적도, 관심도 별로 없었던 주제를 다룬 <볼륨을 낮춰라>이다. 음악을 하는 부인과 그 주변 사람들 덕분에 인간의 감각이 얼마나 예민한지,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어졌는지는 익히 간접적으로 알고 있었다. 특히 성악가들의 경우 일반인처럼 ‘목이 아프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연구개가 부었다.’, ‘편도가 아프다.’ 등 뭔가 의학적인(?!) 진단을 스스로 내릴 수 있었고, 공연장의 먼지 정도도 숨만 쉬어보면 목이 감별할 정도로 감각이 일반인의 그것과 달랐다. 그런 이들에게 청력은 어떨까?
<볼륨을 낮춰라>에 의하면 1만 명당 1명꼴로 절대음감이 있다고 했는데 내 주변에는 앞서 말한 이유로 그 수가 꽤 많았다. 그래서 절대음감과 청력을 연결하여 글을 쓰려고 몇몇과 인터뷰를 하다가 우연히 성악가인데 한쪽 청력을 잃은 사람을 알게 되었다. 정말 궁금했다. 자신의 목 상태가,심지어 공기의 상태가 조금만 달라져도 바로 눈치를 챘던 사람들이 성악가였는데 왜 청력이 떨어지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을까?
우선 청력에 관한 가족력이 없다고 했고, 어떤 사고로 하루아침에 청력을 잃은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쪽 귀의 청력만 잃은 상태라 아예 못 듣는 것은 아니지만 생활이나 노래를 할 때 불편함이 있다고 했다. 꽤나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덤덤하다고는 했지만 의사도 아닌 내가 이 문제에 대해 너무 깊게 이야기할 수가 없어 이 정도로 마무리를 했다. 대신 성악가는 청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청력 잃는 것을 막고 싶었지만, 그 ‘무슨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청력이 손상되지 않는 게 최선이다.
혹시 <볼륨을 낮춰라>에 이미 손상된 청력을 원래로 되돌릴 수 있는 기발한 해결책이 소개되나 싶었는데 아쉽게도 저자가 개발한 또는 발견한 획기적이고 노벨상 감인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 책은 경고하는 것 같았다. 헤어진 연인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 묻어나는 말처럼 ‘있을 때 잘했어야 한다.’ 즉, 들릴 때 잘 관리해야 한다. 그게 청력에 대한 최선으로 보인다.
어떻게 관리를 할 수 있을까? 귀를 파는 행위는 그 당시는 시원할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귀를 망가뜨리는 행위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귀파개를 당장 버렸고, 화장실의 면봉은 전부 화장대로 옮겼다. 솔직히 샤워 후 면봉은 국룰이었다. 왠지 살짝 불려서 닦으니 더 잘 닦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것이 오히려 귀를 이물질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보호막을 없애는 행위라니, 딸아이의 면봉도 바로 그만두었다. 종종 귀가 간지러우면 ‘누가 내 이야기 하나보다.’라고 말하면서 오른쪽이면 뒷담, 왼쪽이면 칭찬이라는 의미 부여와 함께 귀를 파곤 했었다. 귓밥이 나오는 것이 보기에 안 좋지만 청력을 잃는 것이 훨씬 더 안 좋은 것이기에 보이는 귓밥이 없도록 하는 행동으로 바꾸었다.
이어폰 사용을 줄였고, 컴퓨터 소리를 낮췄다. 이동시간에 이어폰 착용은 신발 신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연한 것이었다. 외부 소리가 클수록 이어폰 속 노랫소리도 당연히 커졌다. 다행히 이동시간에 독서를 시작하게 되면서 이어폰을 빼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화상 회의가 없는 한 이어폰 착용 시간은 거의 없다. 락다운이 풀려 헬스장에 다시 가게 되면 이어폰 이용 시간이 하루 1시간 정도 될 텐데 이 마저도 줄여볼까 생각 중이다.
공부나 일을 할 때 노동요를 듣기 위해 컴퓨터에 이어폰을 꽂고 사용하던 것도 ‘집중’을 위해서 아예 음악을 틀지 않은지 6개월 정도 되었다. 정확하게는 <초집중>을 읽고 난 뒤의 변화이긴 한데, 독서와 집중을 위한 행동 변화가 청력 보호에도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다시금 독서를 하게끔 해준 씽큐온과 빡독, 체인지 그라운드에 감사했다.
성악가들은 음악을 일정 부분 크게 들을 수밖에 없다. 오케스트라 연주를 바로 뒤 또는 앞에서 듣는 경우도 많고, 마이크 없이 자신의 성량을 최대로 끌어올려서 불러야 음악에 목소리가 묻히지 않기 때문에 연습 자체를 실전처럼 하느라 더 그렇다. 그들의 청력 관리 중 하나가 아무 소리도 듣지 않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극장의 연습시간이 최대 2시간으로 하루에 오전과 오후 나눠서 하는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인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것처럼 아무 소리도 듣지 않고 귀를 쉬게 해주는 것이다.
Output을 위해서 읽은 책의 내용을 주변에 많이 알리고자 한다. 그때마다 받아들이고 변화하기를 기대하는 나의 바람과 달리 대부분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뇌피셜만으로 오히려 책의 내용을 반박한다. 청력만큼은 꼭 한 번쯤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청력은 잃으면 끝이다. 너무 섬세한 기관이라 다시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두개 있다고 하나 잃어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적응을 하고 극복한 성악가도 있었지만 그의 노력은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이 정말 힘들었다고 한다. 성악가가 아니더라도 세상에는 내 아이의 옹알이처럼 계속 듣고 싶은 것들이 많다. 그것을 충분히 듣기 위해 귀를 충분히 쉬게 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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